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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평 이재걸(미술평론/미술사)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의 철학을 “어떠한 철학도 단 하나의 유일한 세계의 긍정, 그리고 이 세계 안의 무모한 차이 혹은 다양함의 긍정을 이토록 멀리 밀고 나가지 못했다” 라고 평가했다.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에게서 ‘차이’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긍정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Monad: 단자, 單子) 개념 안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단순하다’는 원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나드는 더는 나눌 수 없는 세계의 최소 단위이다. 물질과 다르게 무한히 변형되고 점진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약 세계의 실체가 원자와 같이 유한한 물질로 구성되었다면, 그 실체는 무한한 분할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세계는 구성될 수 없다. 따 라서 ‘실체’는 비물질적이어야 한다. 들뢰즈는 미분과 극한의 철학자인 라이프니 츠의 논의를 심화하여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이 두 철학자의 사 유 안에서 세계는 머물러 있지 않고 끝없이 분할하는 주름들의 ‘차이’ 그 자체이 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세계야말로 감각과 현상만으로는 담아내지 못할 세계 의 진정한 리얼리티가 존재하는 곳이다.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논하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바로크 예술을 끌어 들인다. 1988년에 쓴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가 바로 그것인데, 그에게 바로 크는 세계를 확신에 찬 선들이 모여서 명확해지는 곳으로부터 대담하게 해방시켜 내면의 굴곡과 어둠의 잠재성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내던진 위대한 사건이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늘 그렇듯 놀라운 통찰력과 수사력으로 바로크 정신에 우주 적·형이상학적 가치를 더한다. 현대미술에서도 수없이 등장하는 주름의 이데올로기는 17세기 바로크가 주름 잡힌 세계의 애매하고 모호한 감정을 우리의 의식에 격렬히 제시함으로써 신체와 영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전혀 새로운 조건 위로 유도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래서 바로크의 주름은 분화하며 나아가는 지금에서 계속 논의되어야 할 대상이 다. 라이프니츠와 들뢰즈 이후에도 바로크 주름은 변화한 현실의 안과 밖에서 끊 임없이 접히고 펼쳐지기 때문이다.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Le Pli, Leibniz et le Baroque, 1988) 질 들뢰즈 지음 이찬웅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발행일 2004년 이재걸(미술평론/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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